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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재)동영장학재단 &amp;gt; 정보마당 &amp;gt; 뉴스레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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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동영장학재단은 많은 장학생에게 큰 규모의 장학금과 각종 교육기자재를 지원해왔으며, 한국의 특정지역뿐 아니라 해외유학생에게도 배움을 원하는 사람들이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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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장보고의 고향’ 완도에서 10회 장보고한상 어워드 시상식 성대하게 개최</title>
	<link>http://xn--6j1bwry94b9qb9a326o.kr/bbs/board.php?bo_table=notice&amp;wr_id=13</link>
	<description><![CDATA[<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xn--6j1bwry94b9qb9a326o.kr/data/file/notice/3554065509_HtcJXBFW_93593117f150569df895d8951762e616e917416d.jpg" src="http://xn--6j1bwry94b9qb9a326o.kr/data/file/notice/3554065509_HtcJXBFW_93593117f150569df895d8951762e616e917416d.jpg" alt="" class="img-tag img-tag "/></p><p><img src="http://xn--6j1bwry94b9qb9a326o.kr/data/file/notice/3554065509_sHF1VdWI_93593117f150569df895d8951762e616e917416d.jpg" alt="" class="img-tag img-tag "/></p>2016년부터 장보고한상 선양사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주년을 기념하여 28일 장보고의 고향 완도 청해진스포츠센터에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0회 장보고한상 어워드 시상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br/><br/>장보고글로벌재단(이사장 김덕룡)에 따르면 김덕룡 이사장을 비롯한 신우철 완도군수, 김양훈 완도군의회 의장을 비롯한, 박성규 부의장 및 지민, 박재선, 박병수, 조인호,최정욱, 허궁희, 조영식 군의원과 김점배 장한상수상자협의회 회장, 박종범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 회장, 이재완 엔지니어링공제조합 이사장과 한원희 목포해양대 총장과 강춘길 유럽한인회총연합회 부회장, 권대은 말레이시아 대한체육회장, 재단사업운영위원회 이현주 위원장과 장보고글로벌경영아카데미 총동문회 신 선 회장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br/><br/>이날 시상식에는 김덕룡 이사장의 개회사와 신우철 완도군수의 환영사, 김양훈 완도군의장의 축사에 이어 장한상 수상자 창업성공스토리 감상문 공모전 시상식이 병행했다. 올해 4회로 공모한 감상문을 제출한 국내외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309명으로 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42명의 수상자가 선정됐다.<br/>이날 시상식에는 중등부문에서 최우수상 수상자 최온유(완도중)군과 우수상 김시우(완도중), 강시우(완도중)군과 함께 초등부문에서 대상 수상자 조윤우(서울대도초)와 우수상 유지우(서울 승전초)와 하재민(온양권곡초) 군 등 7명의 수상자가 참석했다. 이밖에 완도중 최진희 교사가 최우수교사상을 수상했다.<br/>이날 시상식에는 지난 5월 31일 완도군민의 날에 완도명예군민으로 선정된 김점배 회장을 비롯한 신경호, 전용희, 엄광철 장한상 수상자에게 신우철 완도군수가 완도명예군민패를 전달했다. 다만, 올해 완도명예군민으로 선정된 고상구 K&K트레이딩 회장(베트남)과 강정민 타 안 타즈마니아 회장(호주) 등은 참석하지 않아서 명예군민패가 전달되지 않았다.<br/><br/>이어 양장석 수상자가 완도에 고향사랑기부금 1천만원을 기부한 내용의 전달식이 개최됐다.<br/><br/>이어 장보고한상 어워드 시상식에는 헌정자(대상) 권영호 인터불고 회장(스페인)과 국회의장상은 최영철 사나그룹 회장(케냐)을 대신하여 장남 최용석 사나그룹 총괄사장이 수상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은 김종순 JS홀딩스 회장(영국)이,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은 전미자 아카키코 회장(오스트리아)이 ,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은 박원규 넥스 트레이딩 회장(콜롬비아)이, 해양수산부장관상은 하순섭 한파그룹(팔라우) 회장이 각각 받았다.<br/><br/>제10회 장보고한상 어워드 시상식에는 김점배 알카오스트레이딩 회장(오만)과 박종범 영산그룹 회장(오스트리아), 최분도 PTV그룹(베트남)과 신경호 금정학원 이사장(일본), 전용희 브랜드앤베이커리 회장(중국), 박신헌 대련윤승장식유한공사 회장(중국), 이마태오 KMT 회장(말레이시아), 천주환 CTK ASIA RUBBER 회장, 엄광철 선성홀딩스 회장(중국), 남기학 예지아기술그룹 회장(중국), 양장석 KC이너벨라 회장(중국) 등 역대 수상자들이 참석하여 10기 수상자들을 축하했다.<br/><br/><A HREF="https://www.gb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1129" TARGET="_blank"  rel="nofollow">https://www.gb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1129</A><br/>Global Biz News 2025.10.01 자 발췌한 내용입니다]]></description>
	<dc:creator>재단이사장</dc:creator>
		<dc:date>Sat, 07 Feb 2026 01:18:28 +0900</dc: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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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권영호 대상 수상자-2] 원양어업과 수산에서 호텔과 골프, 육영사업 등 영토 확장했으나 구조조정 실패 https://www.gb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9595</title>
	<link>http://xn--6j1bwry94b9qb9a326o.kr/bbs/board.php?bo_table=notice&amp;wr_id=12</link>
	<description><![CDATA[<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xn--6j1bwry94b9qb9a326o.kr/data/file/notice/3554065509_E6rGd7oc_d035ff05193589fdf819a9a43e7299f3e6081d4f.png" src="http://xn--6j1bwry94b9qb9a326o.kr/data/file/notice/3554065509_E6rGd7oc_d035ff05193589fdf819a9a43e7299f3e6081d4f.png" alt="" class="img-tag img-tag "/></p><p><img src="http://xn--6j1bwry94b9qb9a326o.kr/data/file/notice/3554065509_VNH7rads_df9e8f86890012081ac0eeba3f4e9c5acf99354b.png" alt="" class="img-tag img-tag "/></p>고향에 동영장학재단 설립해 40년 동안 2만 여명에게 150억원 장학금 지원<br/><br/>거친 파도와 싸우며 평생을 보낸 권 회장은 ‘바다에서 번 돈을 고향에 쓰겠다’는 결심 아래 1986년 한국에 수산회사인 ㈜인터불고를 설립했다. 이어 고향 울진에 동영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권 회장은 1986년, 자신의 호를 딴 ‘동영(東榮)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이 장학 재단은 매년 고등학생 2백여 명과 대학생 80여 명, 해외 유학생 10여 명, 중국 조선족과 한족 대학생 300여 명 등 모두 600여 명에게 5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86년 설립부터 작년까지 40년 동안 수혜자는 19,300여 명에 이르며 장학금 규모도 150여 억 원을 지원했다.<br/><br/>권 회장은 1987년에 부산 하사구 장림동에 8천 t급 냉동장공장을 인수하고 3만 2천t급 대형냉동공장으로 증설하는 한편, 대구 파크호텔을 123억 5천만 원에 인수했다. 이어 금호강변을 낀 절벽을 이용해 특 1급 호텔을 짓기로 하고 고모령 주변 과수원과 밭 1만 평을 인수했다. 이밖에 경산과 원주에 골프장을 지었다.<br/>또한 1996년 한국 식품을 유럽에 유통한다는 목적으로 네덜란드에 설립된 한국농수산유통공사의 현지법인 KTDC가 적자 누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이를 인수했다.<br/>특히 1997년 한국이 IMF 외환 위기로 대구에서 개최하려던 세계 청소년 체육대회가 국가 재정난으로 취소되는 상황에서 2002년 월드컵 대회 만큼은 철저하게 준비하면서 잘 치르고 싶은 마음에 막대한 돈을 투입했다.<br/><br/>권 회장은 “호텔 부지를 제외하고 건축비만 8백 여억 원이 투입해야 했어요. 800억 원이면 어선 30척을 건조해 연간 8백억~1천억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어요. 그런데 호텔을 만든다해도 매출 3백억 원을 올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하지 않으면 2002년 월드컵 예선전의 대구 유치는 어려웠어요. 대구시에서는 저에게 자꾸 호텔을 지으라고 요청했습니다.”<br/>그는 호텔 인터불고(신관)을 건립하는데 3년의 공사를 거쳐 준공식을 2001년에 가졌다. 구관을 포함하여 총 부지 2만 4천6백 평에 건축면적 3만 1천평으로 객실 360실과 국제회의장 620평 규모 등 지역사회의 랜드마크를 세웠다. 이 덕분에 그가 지은 호텔에서 2002년 월드컵뿐만 아니라 2003년 세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세계 물포럼 대회, 세계 육상대회 선수단 숙소로 사용됐다. 그의 통 큰 투자 덕분에 대구시가 국제대회를 개최한 메가시티로 자리매김하는데 한몫을 담당했다.<br/>권 회장은 호텔의 모든 시설은 스페인풍으로 꾸몄고 로비에는 스페인 문화원을 두어 도서관을 열고 스페인 강좌를 개설하는 등 세련된 유럽 문화와 서비스 노하우를 고향에 이식하는 데 역점을 뒀다. 그는 단순히 건물만 화려하게 짓는 데 그치지 않고 스페인의 인터불고 아카데미를 통해 양성된 인재들을 투입했고, 유럽에서 직접 공수한 식자재와 와인을 선보이며 국내 호텔업계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 공로로 권 회장과 자녀도 한국에 스페인 문화 전파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스페인 국민훈장을 수상했다.<br/><br/>이어 스페인 북부 갈라시아 지방 항구도시 비고에 ‘골프 리아 데 비고’ CC를 건설했으며 경산에 조성한 27홀 규모의 &#039;인터불고 컨트리클럽(CC)&#039;를 지었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도 국제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수준 높은 코스를 설계했다.<br/><br/>이 밖에 2011년 대구세계 육상대회 유치도 인터불고 계열사인 스포츠 마케팅(IB) 스포츠에서 한몫을 했다. 이처럼 수산업에서 배운 &#039;치밀한 관리&#039;와 서비스업의 &#039;섬세함&#039;이 결합하자 인터불고는 수산, 유통, 호텔, 골프, 육영사업을 아우르는 종합 그룹으로 우뚝 섰다.<br/>그러나 1994년 유엔 해양법 발효로 연안국 수역 진출이 제한되면서 한국원양산업이 쇠락, 운영난을 겪으면서 한국에 투자한 기업들이 자금난을 겪었다. 특히 창업주가 나이를 먹은데다 외국에 거주하고 있었던 점 때문에 모국에 투자한 기업 경영을 국내 전문가들에게 위임하면서 관리 부실 등으로 그룹 계열사의 상당수가 폐업되거나 매각됐다. 현재 부산 냉동공장과 장학재단은 권 회장이 직접 간여하지만, 한국에서 인터불고 법인으로 사용되는 것은 자신의 기업 정신과 윤리에 맞지 않는 별개의 조직이다. <br/>권 회장은 조국에 투자한 법인의 구조조정을 전문가에게 위임하기보다는 창업한 자신이 직접 사업장을 관리하고 마케팅했었다면 결과를 달라졌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br/>그는 세상에 태어나 가난과 무지를 극복하려고 재물을 악착같이 모았지만, 그 모은 재물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했다. 이 때문에 장학재단을 만들고 국경의 벽을 허물고 대학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식품공장을 건립해 여기에서 발생한 수익금 전액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을 보람으로 삼고 있다.<br/><br/><br/>국내에선 원양어선 승선 희망자 줄어 중국 조선족 출신 해기사 양성 위해 학과 및 단과대 신설<br/><br/><br/>권영호 회장이 중국의 대외개방 직후 1990년부터 조선족 선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국내에서 원양어선을 3D 업종으로 인식되면서 배를 타겠다는 희망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br/>그가 조선족 선원을 모집하기 위해 찾은 지역은 길림성 매하구시(梅河口市) 류하현 동흥촌이었다. 이 지역 조선족 출신 선원들이 많았던 탓에 ‘선원 마을’로 알려졌다. 1995년부터 중국 동포(조선족) 선원을 적극적으로 채용했다. 그러나 이들은 오랜 사회주의적 풍토에 젖었던 탓에 하루에 8시간만 일했다. 그러나 원양 어업의 특성상 하루 12시간, 필요에 따라선 그 이상으로 일을 해야 하는 작업환경이었다. 이들에게 능력을 갖추면 선장과 기관장을 임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동기부여를 심어줬다.<br/>조선족 선원으로 앙골라 어장에 투입한 지 7년 후인 1997년 대성 5호에 조선족 선장과 기관장을 발령 냈다. 이를 계기로 조선족 출신 선장과 기관장은 55명을 비롯하여 항해사 및 기관사는 100여 명에 달하고 1만 명의 선원들이 근무했다.<br/><br/>권 회장은 1995년 여름 홍수 때문에 동흥촌으로 가는 다리가 파괴돼 촌민들이 나들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리 복구비용으로 1만 달러를 지원했다. 또한 동흥촌의 동네 도로가 비포장이어서 비만 오면 주민들이 장화를 신고 다녀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도로포장 비용으로 5만 달러를 지원하는 등 16년간 꾸준히 지원했다. 이에 감명을 받은 지역 촌민들이 도로에 ‘권영호길’이라는 팻말을 달아주었다.<br/>1997년에는 동흥촌 소학교에 교육시설 구입비로 6천 달러를 지원했고 노인협회에 텔레비전과 풍물악기를 기증했다. 그 후에도 동흥촌 조선 경로원과 도로 수리 비용으로 수천 달러를 지원했다.<br/><br/>그는 1996년 10월 길림성 매하구시(梅河口市)에 조선족과 중국인의 건강을 돌보는 비영리법인 동영 병원을 지었다. 또한 1999년 중국 정부와 교섭해 매하구시 직업교육을 전담하는 제2 고급중학교에 항해과 및 기관과를 신설했다. 특히 한국에서 고급선원을 양성할 교사를 파견하고 1만 2천 달러를 들여 어학실습실을 마련했다. 또한 매월 600달러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br/>그는 2002년 9월 길림성 장춘(長春)시 국립 길림대학교에 8백만 달러를 투입해 연건평 3만 3천여 평에 17층 규모의 단과대학 동영학원을 설립했다. 이 학교는 중국 국가교육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스페인 학과와 관광학과 등을 설치했다.<br/>길림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권 회장은 산학 합작으로 ‘장춘 길림대 녹색식품 공장’을 세웠다. 길림대학 측이 제공한 1만 2천㎡의 부지에 IB 그룹이 연건평 9천500㎡, 4천500t의 저장시설과 냉장, 냉동, 가공시설뿐만 아니라 2천㎡의 판매장을 갖춘 최신·최대 식품공장이다. 이 식품 공장을 설립하고 그곳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을 4천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러한 공로로 2005년 중국정부는 그에게 우의상(友誼賞)을 수여했다.<br/><br/><br/>나눔의 철학과 육영 사업, “돈은 벌 때보다 쓸 때가 귀하다”<br/><br/><br/>그는 한국과 스페인, 그리고 아프리카를 잇는 거대한 인적·물적 네트워크의 중심에 섰다. 국경을 넘나드는 &#039;인터불고 네트워킹&#039;을 통해 거대한 수산 제국과 화려한 호텔 영토를 일군 권영호 회장의 집무실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br/>그는 “내가 번 돈은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아 관리하는 것일 뿐이다”라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 권 회장의 마드리드 자택은 대지가 800평이며 건평은 100평 정도로 평범한 중산층 주택으로 알려졌다. 가구는 낡았고, 값나가는 집기는 아무리 찾아봐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이 집의 방 한 칸에 부인과 함께 사용하고 나머지 방은 인터불고 그룹의 마드리드 사무실과 손님이 찾아오면 방을 내준다.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던 그에게 돈은 축적의 대상이 아니라 ‘흐름’의 대상이었다.<br/>그는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마자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회 환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키우는 일로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함께 발생하는 이익은 그 지역을 위해 투자하거나, ‘교육’에 아낌없이 지원했다. 그는 “선행은 숨기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널리 알려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기부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서라도 기부문화를 열린 구조로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br/><br/>권 회장은 1993년에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이 타계할 때까지 20여 동안 살았던 집을 12만 6000달러를 들여 사들였고 13만 달러의 사재를 투입, 대대적으로 수리한 뒤 기념관으로 보존할 것 등의 조건을 붙여 정부에 기증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까지 받았다.<br/>그는 고향 대구 계명대학교에 대학 발전 기금을 물론 임야 75만 평을 기탁하는 등 단순한 기부를 넘어선 &#039;미래에 대한 투자&#039;였다. 그는 빌딩을 올리는 것보다 사람의 가슴속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것을 훨씬 가치 있는 일로 여겼다.<br/>그는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교육 분야에 기부를 많이 했다. 그의 열정은 장학금 지급에 머물지 않고 중국 연변대학교에 ‘인터불고 도서관’을 건립하고, 길림대학에 단과대학을 설립하고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 학교를 세웠다. 국경을 초월한 그의 육영 사업은 &#034;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젊은이가 없어야 한다&#034;는 자신의 아픈 과거에서 비롯된 결심이었다.<br/><br/>권 회장은 나눔의 영역을 문화교류로도 확장했다. 스페인에 한국을 알리고, 한국에 스페인의 선진 문화를 소개하는 데 사재를 털었다. 이러한 공로로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로부터 &#039;이사벨 가톨릭 대훈장&#039;을 수여 받은 것은 그가 보여준 민간 외교의 결실이었다.<br/><br/><A HREF="https://www.gb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9595" TARGET="_blank"  rel="nofollow">https://www.gb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9595</A>]]></description>
	<dc:creator>재단이사장</dc:creator>
		<dc:date>Sat, 07 Feb 2026 01:09:44 +0900</dc: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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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권영호 대상 수상자-1부] 3천만원 고물선 구매, 수리해 숱한 도전 및 혁신정신으로 세계적 그룹 발전시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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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xn--6j1bwry94b9qb9a326o.kr/data/file/notice/3554065509_gx1tkBpb_96dfc46af36865b774599cf16b53b888bca376ff.jpg" src="http://xn--6j1bwry94b9qb9a326o.kr/data/file/notice/3554065509_gx1tkBpb_96dfc46af36865b774599cf16b53b888bca376ff.jpg" alt="" class="img-tag img-tag "/></p><p><img src="http://xn--6j1bwry94b9qb9a326o.kr/data/file/notice/3554065509_kzRusFrE_96dfc46af36865b774599cf16b53b888bca376ff.png" alt="" class="img-tag img-tag "/></p>스페인 대부로 불리는 권영호(85) 인터불고 그룹 회장은 회사의 구성원들이 마음과 뜻을 모아 화목하게 일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기업가정신을 갖고 있다. 5달러로 한때 5억 달러로 벌어들인 권영호 회장은 ”운(運)은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고, 성공은 나눈 자에게만 머문다”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혁신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대서양의 거친 풍랑 속에서 불굴의 도전 정신과 “열매를 얻은 곳에 씨앗을 뿌려라”는 나눔의 철학으로 기업의 사회 환원을 실천한 거인(巨人)이다. 권영호 회장은 2025년 9월에 제10회 장보고한상 어워드 대상수상자로 선정됐다. 글로벌비즈뉴스(GBN)은 드라마틱한 글로벌 경영을 펼친 권영호 회장의 창업 성공스토리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lt;편집자 주&gt;<br/><br/>가난이 싫어 가출해 최연소 기관장 승선 ... 라스팔마스 주재관으로 근무 중 폐선 구입, 수리해 출항해 만선(滿船)<br/><br/>경북 울진군 죽변읍의 한 어촌에서 1940년에 태어난 권영호 회장은 10세 때 고기 잡으러 나간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었다. 이 때문에 그에게 한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바다에서 성공하겠다는 어렸을 때의 꿈을 20대부터 성취했다.<br/>그는 지독한 가난이 싫어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출하여 부산에서 주경야독으로 고입 및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20세에 결혼 직후 카투사로 부산 제3부두 주둔한 미(美) 병참부대 수송부에서 근무하면서 부대장의 허락을 받아 1962년에 동아대학교 영문학과(야간학부)에 입학, 1969년에 졸업했다.<br/>1960년대 국책기업으로 한국수산개발공사가 설립, 원양 개척으로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소문을 듣고 고급선원 연수과정을 거쳐 을종 1등 기관사의 면허를 취득했으며 1998년에 을종 기관장 면허를 땄다.<br/>그는 26세에 한국수산개발공사 해기사 모집에 지원서류를 제출해 채용되면서 최연소 기관장으로 남해호 252호에 승선했다. 이 선박은 아프리카 중부 몬로비아에 기지를 두고 대서양에서 조업을 했다. 그는 이때 선박용 디젤엔진을 다뤄본 경험이 없었지만 영어로 된 매뉴얼을 충실하게 익혔다. 또한 숙련된 기관사들이 하는 일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디젤 엔진 기술을 습득했다.<br/>당시 대형어선을 운항할 만한 해기사가 부족한 상태에서 대림수산이 대일차관으로 일본에서 건조한 800t급 선미식 트롤선 대진호에 승선을 희망하는 기관장들이 많았지만, 이들 모두 물리치고 권 회장이 취직해 승선했다. 그는 태평양을 지나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 카리브해를 경유 대서양까지 50일의 항해 끝에 1968년 스페인령 카라리아제도 라스팔마스항에 입항했다.<br/>라스팔마스는 지리적으로 서아프리카 상단 모로코와 서사하라 중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항로의 선박 보급기지의 역할을 했다. 특히 이곳은 북부 아프리카의 사하라 어장과 인접했다. 이 어장은 아무 곳이나 그물을 던져도 고기를 가득 잡을 정도로 ‘황금 어장’으로 유명했다.<br/>라스팔마스는 한국 원양어업 역사가 서린 곳이다. 1966년 한국수산개발공사 소속 원양어선이 최초로 입항했고, 1970년대 후반에는 서아프리카에서 조업하는 한국 원양어선이 250여 척에 달했으며 70년대 말까지 라스팔마스 원양어업이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는 약 2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파독 광부 및 간호사들의 고국 송금액의 1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라스팔마스 한인사회는 많을 때는 교민이 3~4천 명에 이르고 해상에는 1만 명이 근무할 정도였다.<br/>그는 미군 병참 부대 근무하면서 각종 장비를 수리하는데 손에 익혀 있었던 덕분에 대진호 선내의 모든 기기는 물론, 항해실의 레이다 및 어군탐지기, 통신장비까지 고장이 나면 밤을 새워서라도 수리를 마쳤다. 특히 좁은 기관실에 박혀 해도를 연구하고, 스페인어 단어를 외우며 세계 수산업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모든 시간을 쏟았던 그를 보고 동료들 사이에서는 &#039;독종&#039;이라 불렸다.<br/>그가 2년 승선하는 동안 술과 담배도 하지 않고 불필요한 지출을 하지 않는 등 월급을 모아서 450만 원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었다. 이 돈으로 고향에 상답 논 100마지기를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이처럼 그는 앞으로 자신의 &#039;원양어선&#039;을 소유할 꿈을 꾸며 구두쇠처럼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br/>당시 원양어업은 돈벌이가 가장 빠른 산업으로 부상했다. 대림수산은 10여 척의 선박을 증강해 사하라 어장에서 승부를 걸 작정으로 선박 실무에 밝은 인재를 라스팔마스 기지에 투입하려고 권영호를 1972년 기관장에서 주재원으로 발탁했다. 그는 이때 가족들을 스페인으로 이주, 현재까지 살고 있다.<br/>권 회장은 대림수산 기지 주재원 생활 8년 동안 밤낮 기름때투성이의 작업복 차림으로 부두를 지키면서 대림수산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 선박에 대해서도 대가 없이 수리를 해주거나 기술고문에 응했다. 이러한 공로로 한국원양협회가 발족한 후 최초의 공로상을 수상했다.<br/>권 회장은 스페인령 라스팔마스 기지에 근무한 선원들이 병원진료를 받을 때에 예상 문답과 의약 용어를 정리한 한글 대역 스페인어 책자를 만들어 현지 동포에 배포했다. 이 때문에 라스팔마스에 살던 한국 사람치곤 권영호 차장의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br/>권 회장은 1979년 기름값 폭등과 선원 확보난으로 대서양 어장을 철수하던 일본 회사의 폐선(299톤)을 고철값에 해당되는 2만5천불에 구입했다. 일본 회사 장부가격은 39만불이었는데, 권 회장의 수중에는 2만5천불 밖에 없었다. 그는 고기를 잡으면 전량 선주사에게 매각한다는 약속을 한 뒤 매입했던 것이다. 그는 3개월 수리 작업 끝에 원양어선 대성호로 출어한 결과, 31만 5백 달러의 어획고를 올려 배값을 치렀다. <br/>권 회장은 자기 사업을 시작한 지 불과 2년 만에 4척의 선대를 보유한 파나마법인 인터불고를 설립했다. 그는 한때 태평양과 인도양, 대서양에서 조업한 원양어선 45척(2만 t)의 정예 선대를 보유하고 전 세계 22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세계적인 굴지의 그룹으로 발전시켰다. 이 때문에 21세기 태평양 장보고는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대서양 장보고는 권영호 인터불고그룹 회장으로 회자되었다. 라스팔마스 항구 사람들은 동양에서 온 이 젊은 사업가를 가리켜 &#039;지중해의 젊은 사자&#039;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br/>스페인에서 사용하고 있는 권영호 회장의 신분증. 이는 스페인 정부가 이때까지 장수라는 작은 배려인데, &#039;돈키호테&#039;로 대표되는 스페인 사람들의 문학적 위트가 숨어 있음을 알수 있다.<br/><br/><br/>고물 중고선으로 앙골라 어장에서 부의 신화를 쓰다<br/><br/><br/>그가 원양어업에 발을 들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제4차 중동전쟁과 이란혁명 등으로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 무기화 정책을 고수하면서 기름값이 폭등하고 어획량이 줄어 도산 위기에 처했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0년간 원양어선의 기관장으로 근무하면서 현지 어민들과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선원들을 다스리는 법과 그들의 문화를 배웠기 때문이다.<br/>그는 아무리 회사 경영에 어렵더라도 직원들의 임금은 한 번도 밀리지 않고 지급했고 거래처와의 약속은 손해를 보더라도 반드시 지켰다. 그는 &#034;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신용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034;라는 속담을 생명처럼 지켰다. 그 결과, 까다롭기로 유명한 스페인 은행들이 담보 없이 그의 이름 석 자만 보고 대출을 승인해 준 일화는 유명하다. 이는 훗날 인터불고가 스페인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<br/>그러나 설상가상으로 사하라 어장이 황폐화되면서 회사 경영은 힘들었다. 그 잘나가던 사하라 어장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았던 것은 무분별한 산림 벌목과 경작 확장으로 사하라 사막이 매년 남쪽으로 5~6km씩 확장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흙먼지가 대서양으로 날아들면서 세균과 곰팡이가 바다로 유입되면서 &#039;산소 고갈&#039; 및 &#039;해수 산성화&#039;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닷물이 뜨거워지면서 해수온 상승 및 지구 온난화, 무분별한 남획으로 어획량이 줄면서 대다수의 원양업체들이 심각한 불황의 늪에 빠졌다.<br/>권 회장은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원가절감과 새로운 어장을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직접 배에 승선했다. 그는 ‘위험한 곳에 돈이 있다’라는 상훈(商訓)에 따라 주(駐) 라스팔마스 한국총영사관으로부터 앙골라에 들어가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1982년 6월 22일 중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앙골라와 입어계약을 체결했다. 당시만 해도 앙골라는 한국 원양 회사들이 가장 꺼렸던 나라였다. 그 이유는 게다가 라스팔마스로부터 어장까지 15일 걸리는 데다가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해 사회주의 노선을 걸으며 북한의 동맹국이며 좌·우파 간의 내전이 한창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리스크가 많은 나라였다.<br/>그가 위험을 무릎 쓰고 진출한 앙골라 어장은 ‘바다의 노다지’였다. 그 이유는 일본 원양어선으로부터 입수한 ‘앙골라 어장도’의 덕분이었다. 이 지도는 고기를 많이 잡은 포인트에서부터 암초 및 해초와 플랑크톤 서식지까지 세세하게 기록한 보물지도의 역할을 했다.<br/>특히 앙골라 어장에 서식하는 주요 어종은 일본인들이 결혼식 피로연 할 때 내놓은 ‘렌코다이’(れんこだい: 황돔)로, 일반 돔보다 40~50%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 즉, 원양어선 1척의 어획고가 하루 평균 25t씩, 한 항차(약 2개월)마다 약 1백만 달러의 노다지를 캤을 정도로 천문학적인 매출을 기록했다.<br/>그러나 ‘좋은 일에는 방해가 있다(好事多魔)’고 했던가. 양적 질적으로 월등한 실적을 올리고 있을 때 북한 대사관에서 앙골라 정부에 한국어선을 철수시키라는 압력을 가했다. 이유는 앙골라 선대에 북한 선원을 승선시키고 있는데, 그 어획량이 권 회장의 실적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앙골라 정부는 이념보다 경제를 우선시했던 방침에 따라 큰 문제 없이 지나갔다.<br/>그는 낮에는 정부군과 협상하고 밤에는 반란군과 교섭하면서 억척스럽게 앙골라 어장에서 고기를 잡았다. 한때 앙골라 수도 루안다의 일부가 반군에 점령되자, 외국인들은 모두 피난을 떠나고 타국 어선들이 입항을 포기하자, 앙골라 수산청장이 권 회장에게 “굶주림 문제 해결이 시급하니 배를 돌려 고기를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br/>&nbsp;권 회장은 앙골라 어장에서 조업하던 어선에 지시하여 순서대로 입항하여 고기를 하역하라고 지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이 전쟁하는 나라에 입항할 수 없다고 완강히 버텼다. 이에 앙골라 수산장관이 위험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약속을 받고 수십척이 입항하여 기아에 허덕이는 앙골라 사람들에게 고기를 무료로 나눠줬다. 앙골라 정부는 이러한 공을 참작하여 추가로 인터불고 선박들이 많이 조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br/>권 회장의 어선이 입항할 때면 앙골라인들이 부두로 나와 그를 향해 “아버지, 고기 아버지”라 외쳤을 때 감동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권 회장이 앙골라인들과 인간적인 교감을 가진 사례는 수산장관 관사에 근무하던 10살 정도 되는 도우미의 발바닥이 상처로 피고름이 흘리는 상황에서 권 회장이 상처부위를 입으로 짜내며 치료하는 광경을&nbsp; 주인이 목격했다. 감동을 받은 장관은 나중에 법을 제정, 인터불고가 현지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다.&nbsp; 그는 진정으로 앙골라인들과 인간적인 교감을 가졌고 그 덕분에 앙골라인들을 직원으로 많이 채용했다.<br/><br/><br/>아프리카를 매료시킨 &#039;K-수산&#039;... 수산업 수직 계열화 성공<br/>권영호 회장은 내전으로 정국이 불안한 앙골라와 기니비사우 등 아프리카 서부 연안의 어장을 개척할 때 총성이 들리는 해안가에서 현지 관리들을 만나고 어장을 조사했다.<br/>이들 해역에서 어장을 개척할 때 권 회장의 무기는 ‘진심’ 뿐이었다. 그는 단순히 고기를 잡아가는 탈취자가 아니라 현지인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기술을 전수하는 파트너로서 다가갔다. 그는 &#034;우리가 잡는 것은 고기만이 아니다. 현지인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034;며 상생 철학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이를 위해 어려운 아프리카인들을 돕기 위해 구호물자를 마련하여 전역에 지원했다. 이 공로로 한국적십자사로부터 2회의 표창장을 받았다.<br/>1992년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 섬에 유일한 선박수리조선소가 운영위기를 맞고 있으니까, 이를 한국원양협회에서 인수해달라고 했으나, 원양협회에서는 조선소를 구매할 여건도 되지 않는다며 권영호 회장한테 인수를 해달라는 간청을 했다. 이에 인터불고가 그 수리조선소를 인수해 수십년 동안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지역경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 인수로 인터불고는 경영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의 철학은 &#039;있는 곳에 따라 주인이 되자(수처작주 (隨處作主) 그러면 서 있는 곳 모두가 참된 것이다(입처개진 立處皆眞)&#039;라는 좌우명을 실천한 것이다. <br/>이 때 인수한 수리조선소는 총연면적 4만㎡에 2천t급 선박을 들어 올릴 수 있는 도크 시설과 한꺼번에 13척의 배를 수리할 수 있는 파킹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스페인 직원만 70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br/>이런 사례는 또 있다. 앙골라 수산장관이 “스페인 앙골라 어업협정에 의거 5년 전 스페인의 비고항 조선소에서 300t급 어선 7척을 건조했는데, 예산 부족으로 인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인터불고가 그 배들을 인수, 운영해달라고 요청했다.<br/>당시 앙골라 해역에는 소련과 폴란드, 쿠바, 스페인, 이탈리아, 한국 등의 원양어 선대와 앙골라 국가의 소규모 선박들이 조업을 하고 있었다. 권 회장이 거느린 선단은 30여 척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어자원의 감소와 현지 입어 조건이 까다로워진데다 사소한 위반사건에도 수백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거나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아 선박을 수 개월간 압류했기 때문에 인터불고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앙골라 수산장관의 제의를 수락했다.<br/>1991년 앙골라에 현지 유력자와 합작으로 수산회사를 설립한 덕분에 1년 뒤에 한국-앙골라는 수교했다. 앙골라 정부는 권 회장이 땀을 흘리며 고기를 잡는 근면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국민기업으로 키우는 그의 노력를 치하하면서 그를 ‘앙골라 명예영사’로 임명했다.<br/>그는 앙골라 정부의 요청으로 해군이 운영하던 낡은 호텔을 인수해 리모델링 공사에 참여했다가 현지 노동자가 무심코 동력 스위치를 작동해 그의 왼손이 벨트에 말려 들어가는 안전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권 회장의 왼손 인지와 중지,새끼 손가락의 끝부분을 절단했다.<br/>그는 “지도가 없으면 길을 만들고, 어장이 없으면 바다를 열어라.”라는 좌우명으로 ‘잡는 어업’에서 ‘유통하는 산업’으로 수산업의 혁명을 달성했다. 그는 한국인의 근면함과 유럽의 합리성을 접목하면서 “단순히 잡은 고기를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공과 유통망을 직접 참여하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터득했다.<br/>그는 아프리카 현지에 대규모 냉동 창고를 짓고, 잡은 수산물을 즉시 가공해 유럽 전역으로 수출하는 &#039;수직 계열화&#039; 시스템을 구축했다. 당시 아프리카에서 잡힌 생선이 유럽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복잡한 유통망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인터불고의 운반선들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신선한 고기를 공급하면서 유럽인의 입맛을 사로잡자,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른바 &#039;K-수산&#039;의 효율성이 유럽 시장을 강타했다.<br/>앙골라 정부는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그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했고, 그는 현지에서 대통령에 준하는 국빈 대접을 받았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서 대우를 받은 게 아니라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지원하며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간 &#039;진정성&#039; 때문이었다.<br/><br/>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그는 대륙과 대륙을 잇고, 전통 어업과 현대 산업을 결합한 글로벌 수산 제국의 황제로 명성을 날렸다.(이어 제2부로 계속됩니다)<br/><br/>출처 : 글로벌 비즈 뉴스(<A HREF="http://www.gbnews.kr)" TARGET="_blank"  rel="nofollow">http://www.gbnews.kr)</A><br/>&nbsp; &nbsp; &nbsp; &nbsp; &nbsp; <A HREF="https://www.gb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9533" TARGET="_blank"  rel="nofollow">https://www.gb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9533</A>]]></description>
	<dc:creator>재단이사장</dc:creator>
		<dc:date>Sat, 07 Feb 2026 00:58:2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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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권영호 대상 수상자] 전 세계를 무대로 ‘인터불고 신화’를 일군 성공 5계명( 글로벌 비즈 뉴스(http://www.gbnews.kr) 26. 02. 04)</title>
	<link>http://xn--6j1bwry94b9qb9a326o.kr/bbs/board.php?bo_table=notice&amp;wr_id=10</link>
	<description><![CDATA[<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xn--6j1bwry94b9qb9a326o.kr/data/file/notice/3554065509_N7suEjFg_32eb98e10116780188ce7387db88df728e74d6df.jpg" src="http://xn--6j1bwry94b9qb9a326o.kr/data/file/notice/3554065509_N7suEjFg_32eb98e10116780188ce7387db88df728e74d6df.jpg" alt="" class="img-tag img-tag "/></p><p><img src="http://xn--6j1bwry94b9qb9a326o.kr/data/file/notice/3554065509_25ahUvbG_b1f00eb5062bf4f614fb8da336ee75caa92f65ee.jpg" alt="" class="img-tag img-tag "/></p>권영호 회장은 평생을 살면서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다고 회고한다. 1분 1초를 허투루 쓰지 않고 원양어업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벌였으며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<br/><br/><br/>권 회장은 &#034;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훨씬 어렵고 중요하다&#034;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 대서양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며 벌어들인 외화를 어린 학생들의 등록금이 되고, 연구자의 연구비로 지원해주며 나라와 나라 사이를 잇는 우정의 다리로 쓰는 데 앞장을 섰다. 권영호라는 이름 뒤에는 &#039;재벌 회장&#039;보다 &#039;진정한 교육 후원자&#039;라는 수식어가 더 깊이 새겨지기를 원했다. 그가 성공했던 노하우를 5계명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br/><br/>제1계명: 신용은 자본보다 무겁다 (Credit is Power)<br/>2015년 국정교과서에 게재된 권영호 회장의 글 내용<br/>권 회장이 중고선 한 척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 그에게 담보 없이 거액을 빌려준 것은 스페인의 은행들이었다. 비결은 단순했다. 기관장 시절부터 10년간 단 하루도 철투철미하게 약속을 지켰다. 손해를 보더라도 거래처와의 계약을 목숨처럼 지켰던 ‘정직함’이 그의 가장 큰 자산이었다. 그는 후배 경영인들에게 늘 말했다. &#034;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지만, 신용을 잃으면 사업가의 생명은 끝난 것이다.“<br/><br/>제2계명: 현지의 언어로 마음을 훔쳐라 (Localize to Globalize)<br/>그는 스페인과 아프리카에서 철저한 ‘현지인’ 전략을 구사했다. 단순히 언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진심으로 다가갔다. 아프리카 연안에서 조업할 때도 그는 현지인 선원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땀을 흘렸다. &#034;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들의 바다를 얻을 수 없다&#034;는 현지화 전략은 인터불고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핵심 엔진이었다.<br/><br/>제3계명: 위기일수록 사람에게 투자하라 (People First)<br/>오일 쇼크와 환율 폭등으로 전 세계 선사들이 도산할 때, 권 회장은 오히려 직원들의 임금을 올리고 복지를 강화하는 역발상 경영을 펼쳤다. 즉, 그는 &#034;배는 주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선원들이 움직이는 것&#034;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위기 때 자신을 지켜준 회사에 감동한 직원들은 목숨을 걸고 조업에 임했고, 이는 인터불고가 경쟁사들을 제치고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br/><br/>제4계명: 이익은 나누어야 비로소 커진다 (Sharing is Growing)<br/>인터불고(Inter-Burgo)라는 이름에는 &#039;모두가 함께 잘 사는 마을&#039;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는 중국 연변의 공장을 대학에 기증하고, 수백억 원의 장학금을 조건 없이 내놓았다. 이 무모해 보이는 나눔은 역설적으로 &#039;인터불고&#039;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최고의 마케팅이 되었다. 나눔은 지출이 아니라, 더 큰 신뢰를 불러오는 ‘미래형 투자’임을 그는 몸소 증명했다.<br/><br/>제5계명: 현장에 답이 있고, 현장에 미래가 있다 (Field Management)<br/>회장이 된 후에도 그는 양복 대신 작업복을 입고 현장을 누비는 것으로 유명했다. 호텔을 지을 때는 벽돌 한 장의 위치를 직접 살폈고, 어장을 개척할 때는 직접 배에 올랐다. 데이터와 서류는 속일 수 있어도 현장의 땀방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현장을 발로 뛰는 부지런함이야말로 5달러 청년을 거부(巨富)로 만든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무기였다.<br/><br/>권영호 회장의 5계명은 화려한 경영학 이론이 아니다. 바다라는 생존의 현장에서 온 몸으로 체득한 생생한 지혜다. 그가 남긴 것은 거대한 기업 집단만이 아니다. &#034;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쓸 것인가&#034;에 대한 가장 명확한 해답을 우리 시대에 남겼다. 그의 5계명은 오늘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종소리가 될 것이다. 이는 2015년 고등학교 국정교과서 &#039;직업의 선택&#039; 부분에서 성공하는 기업인으로 권영호 회장이 소개됐던 점에서&nbsp; 입증됐다.<br/><br/>권 회장은 바쁜 와중에도 현장에서 경험한 내용을 꼼꼼히 기록했으며 이를 책으로 출판했다. 우선 지혜롭게 사는 방법Ⅰ~Ⅶ(12권)과 지중해 미녀 참다랑어, 내수면 어업의 필요성과 꿈을 포기하지 않는 청년, CEO의 서재 등을 썼다. 또한 공저로 신해양시대 신국부론이 있다.<br/><br/>이밖에 많은 언론들이 그의 스토리를 취재해 기사화했다. 특히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 방영했다. 부산MBC는&nbsp; 9개 지역 MBC 공동 기획으로 한인 미주 이민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039;11부작 자랑스런 한국인&#039;이라는 타이틀로 2003년 2월 23일 방영했는데, 권영호 회장이 첫 번째 주인공이 되었다. 부산MBC는&nbsp; 제1부 ‘대양의 꿈’과 제2부 ‘새로운 희망 해양에서 대륙으로’ 타이틀로 연속해서 권 회장의 삶을 다뤘다.<br/><br/>또한 KBS 1TV에서 2011년 6월 18일 글로벌성공시대 제3편 ‘유럽 최고의 한상’이라는 타이틀로 권회장의 삶을 50분간 방영했다.<br/>그는 드라마틱한 삶을 살면서 많은 나라에서 훈장 또는 각종 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금탑훈장(2007)과 국민훈장 동백장(1992), 대한민국 적십자사유공장 금장(2014)을 비롯한 재무부 장관상 등을 받았다. 또한 중국 길림성과 중앙정부에서 우의상(2005), 스페인 국민훈장 엔 꼬미엔다 메리또 시빌(2003) 등을 수훈했다. 특히 2015년 고등학교 국정교과서 직업의 선택 부분에서 성공한 기업인 권영호의 스토리가 수록됐다.<br/><br/><br/>&nbsp;출처 : 글로벌 비즈 뉴스(<A HREF="http://www.gbnews.kr)" TARGET="_blank"  rel="nofollow">http://www.gbnews.kr)</A> 26. 02. 04<br/>&nbsp; &nbsp; &nbsp; &nbsp; &nbsp;  <A HREF="https://www.gb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9705" TARGET="_blank"  rel="nofollow">https://www.gb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9705</A>]]></description>
	<dc:creator>재단이사장</dc:creator>
		<dc:date>Sat, 07 Feb 2026 00:18:00 +0900</dc:date>
	</item>
	<item>
	<title>동영장학재단, 아주소박하고 특별한 장학금 전달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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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포커스경북 보도(<br/><br/><A HREF="http://www.donghaean-n.com/news/articleView.html?idxno=6061" TARGET="_blank"  rel="nofollow">http://www.donghaean-n.com/news/articleView.html?idxno=6061</A><br/><br/><br/><br/>아주 소박하고 특별한 장학금 전달식<br/>동영재단,학부모대상으로 편한 시간 방문케 해<br/>&nbsp;<br/>김인숙<br/>승인 2021.05.26 09:50<br/>조회수 151<br/>&nbsp;<br/>&nbsp;<br/><br/><br/>기사수정&nbsp; 삭제&nbsp; <br/>&nbsp;<br/><br/><br/><br/>울진출신 권영호 인터불고(IB)그룹 회장이 후원하는 (재)동영장학재단(이사장 황이주)이 최근 재단 2층 사무실에서 가진 ‘2021학년도 장학금 전달식’이 화제다.<br/><br/>&nbsp;<br/><br/>이번 장학금 전달식에는 박재민 (연세대 4년)군 등 울진지역 출신 대학생 50명에게 모두 5천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는데, 장학금 전달식을 24일과 25일 양일간 오후 2시부터 밤 9시까지 가졌기 때문이다.<br/><br/>시간적으로 계산해 보면 전달식에만 무려 14시간을 소요한 셈.<br/><br/>&nbsp;<br/><br/>&nbsp; &nbsp;  (현수막 한 장 달랑 걸어놓고 찾아오는 학부모와 차 한잔 나누며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듣는&nbsp; 등 파격적인 장학금 전달식을 가진 (재)동영장학재단. /김인숙 기자)<br/><br/>&nbsp;<br/><br/>하지만 이번 동영장학재단의 장학금 전달식은 말 그대로 파격적이었다.<br/><br/>내빈 초청, 국민의례, 이사장 인사말 등이 들어가는 그런 일상적이고, 관행적인 행사가 아니었다.<br/><br/>사무실에 현수막 한 장 달랑 걸어 두고 방문한 학부모와 가볍게 차 한잔 나누면서 장학재단의 상황과 장학생의 학교생활 등에 관한 이야기를 부담 없이 나누는 일명 ‘소박한 사랑방 전달식’을 가진 것.<br/><br/>&nbsp;<br/><br/>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코로나 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한다는 차원과 학기 중인 점을 감안해 학생들의 참가를 배제한 채 학부모들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다.<br/><br/>또 학부모들이 편한 시간에 자유롭게 사무실을 찾을 수 있도록 이틀간 방문 시간을 오후 2시부터 밤 9시까지로 했다.<br/><br/>&nbsp;<br/><br/>학부모 이재용 씨는 “여러 행사를 다녀 봤지만 이번처럼 ‘행사 아닌 행사’를 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면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먼저 생각하는 장학재단의 배려에 감사 드린다”고 했다.<br/><br/>&nbsp;<br/><br/>&nbsp;  (인터불고 그룹의 후원으로 36년 째 장학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재)동영장학재단. 황이주 이사장이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김인숙 기자 )<br/><br/>이틀간 저녁을 굶으면서 방문객을 맞이 했다는 황이주 이사장은<br/><br/>&#034;국내외적으로 기업 사정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역 후학육성을 위해 장학금을 아낌없이 희사하고 계시는 권영호 회장님께 감사드린다&#034;면서&nbsp; “코로나 사태,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단 중심이 아닌 학생들과 학부모 중심의 전달식을 생각하다 보니 이런 발상을 하게 됐고, 또 참여했던 학부모들도 ‘딱딱한 행사가 아닌 그냥 이웃집에 다니러 온 것처럼 소박하고 편안한 자리였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해 줘 좋았다”고 했다.<br/><br/>황 이사장은 &#034;앞으로도 장학재단 중심이 아닌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 중심으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조직을 운영해 나가겠다&#034;면서 &#034;군민 여러분들께서 재단 운영에 좋은 아이디어를 주시면 늘 열린 가슴으로 반영토록 하겠다&#034;고 했다.<br/><br/>&nbsp;<br/><br/>동영장학재단은 하반기에도 50명의 장학생을 별도로 선발, 5천만 원의 장학금을 추가로 지급할 계획이다.<br/><br/>&nbsp;<br/><br/>&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인터불고 권영호 회장님/ 포커스경북 자료 사진)<br/><br/>동영장학재단은 인터불고 원주호텔 등 권영호 회장이 이끄는 인터불고 그룹의 후원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인터불고 그룹은 1986년 재단 설립 이후 지금껏 36년간 140여억원을 후원해 오고 있다.<br/><br/>&nbsp;<br/><br/>김인숙 기자<br/><br/>김인숙&nbsp; <a href="mailto:donghaean-n@naver.com"  rel="nofollow">donghaean-n@naver.com</a><br/><br/>&lt;저작권자 © 포커스경북,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gt;]]></description>
	<dc:creator>재단이사장</dc:creator>
		<dc:date>Sun, 30 May 2021 16:20:0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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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동영장학재단 장학금 신청 접수(2020년-포커스경북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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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포커스경북 보도<br/><br/><A HREF="http://www.donghaean-n.com/news/articleView.html?idxno=4606" TARGET="_blank"  rel="nofollow">http://www.donghaean-n.com/news/articleView.html?idxno=4606</A><br/><br/><br/>울진군,2020대학생 장학금 신청 접수<br/>&nbsp;<br/>황이주<br/>승인 2020.07.17 10:16<br/>조회수 202<br/>&nbsp;<br/>&nbsp;<br/><br/><br/>기사수정&nbsp; 삭제&nbsp; <br/>&nbsp;<br/><br/><br/><br/>울진군이 ‘2020년 울진군 대학생 장학금’ 신청을 받는다는 소식입니다.<br/><br/>재) 울진군장학재단은 오는 20일부터 31일까지 2020년 울진군 대학생 1차 장학금 신청을 받습니다.<br/><br/>신청대상은 6일 현재 부모(부모가 없는 경우 보호자)가 주민등록을 울진군에 2년 이상 두고 실거주 중인 자로서, 대학생 본인의 성적이 2020년 1학기 12학점 이상, 평점 2.0 이상, 그리고 타 장학금 및 학자금을 200만 원 미만으로 지원받는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부모가 없는 경우는 학생의 보호자가 앞에서 말슴드린 조건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 됩니다.<br/><br/>신청은 관할 주소지 읍·면사무소에서 접수하며 방문이 곤란한 경우에는 장학재단으로 등기우편 신청하면 된다고 합니다..<br/><br/>1차 장학금 신청 기간을 놓치거나 2학기에 복학하는 학생은 2차 신청 기간인 9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신청할 수 있습니다. 제출서류는 울진군장학재단 홈페이지나 울진군청 홈페이지 대학생 장학금 신청 공고문에 참고하면 됩니다.<br/><br/>한편, 울진군은 학부모 교육비 부담 경감을 위해 울진군 대학생 장학금 외에도 고등학생 학자금 지원, 울진 사랑 장학금(성적 우수, 희망, 다자녀 장학금 등)을 확대하여 지원해 오고 있으며 대학생들의 정주 여건 및 학비 부담 경감을 위해 재경 울진 학사를 2017년 2월 개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br/><br/>&nbsp;<br/><br/>참고로 제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영장학재단은 매년 1월 달에 공고를 내고 접수를 받는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br/><br/>황이주&nbsp; <a href="mailto:kga8316@hanmail.net"  rel="nofollow">kga8316@hanmail.net</a>]]></description>
	<dc:creator>재단이사장</dc:creator>
		<dc:date>Sun, 30 May 2021 16:17:34 +0900</dc:date>
	</item>
	<item>
	<title>(재)동영장학재단 후학육성사업 34년째 이어가(2019년)</title>
	<link>http://xn--6j1bwry94b9qb9a326o.kr/bbs/board.php?bo_table=notice&amp;wr_id=7</link>
	<description><![CDATA[<A HREF="http://www.donghaean-n.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3" TARGET="_blank"  rel="nofollow">http://www.donghaean-n.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3</A><br/><br/><br/>단독-(재)동영장학재단 후학육성사업 34년째 이어가<br/>&nbsp;<br/>김성수기자<br/><br/>승인 2019.03.09 15:01<br/>조회수 585<br/>&nbsp;<br/>&nbsp;<br/><br/><br/>기사수정&nbsp; 삭제&nbsp; <br/>&nbsp;<br/><br/><br/><br/>&nbsp;<br/><br/>올 해도 울진 대학생 100여명 선발 계획<br/><br/>&nbsp;<br/><br/>어려운 기업환경 속에서도 34년째 묵묵히 후학육성을 위한 장학 사업을 펼쳐오고 있는 재단이 있어 화제다.<br/><br/>울진에 있는 (재)동영장학재단(이사장 황이주 전 경북도의원)이 그 주인공.<br/><br/>동영은 대구 엑스코 호텔 등 인터불고(IB)그룹(회장 권영호) 계열사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장학재단이다.<br/><br/>&nbsp;<br/><br/>권 회장이 장학재단을 설립한 것은 지난 1986년.<br/><br/>당시 스페인에서 수산업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배움의 꿈을 접는 고향 후배들이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br/><br/>매년 2~4억원을 장학재단에 기부하고 있고, 지금까지 국내외 1만 5천여명에게 모두 100억원이 넘는 장학금을 지급했다.<br/><br/>&nbsp;<br/><br/>울진출신 장학생만도 3천명이 넘는다. 이사장을 맡고 있는 황이주 전 경북도의원이 1기생 출신이다.<br/>권 회장의 장학 사업은 장학금 지원뿐만 아니라 각급 학교에 피아노 등 악기, 독서대, 시청각 기자재 지원 등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<br/><br/>&nbsp;<br/><br/>당시만 하더라도 시골 오지학교에 피아노를 보유한 학교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었다는 게 교육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br/><br/>권 회장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이 또 한번 화제를 모았던 것은 2010년 계명대에 땅 기증이다. 칠곡군에 있는 임야 243만여㎡로 당시 시가로만 200억원대였고, 이는 계명대 성서캠퍼스 면적의 1.5배로 개교 이래 최고의 기증액으로 알려졌다.<br/><br/>​<br/><br/>&nbsp;<br/><br/>&nbsp;권회장의 육영사업은 국내에만 그치지 않고 지난 1994년부터 중국 연변 과학기술대의 조선족 학생들과 길림지역 대학생 등 500여명을 선발, 매년 학비 전액을 지원하고 있는 등 해외동포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br/><br/><br/>또 중국 길림대학 내에 동영학원이라는 단과대학도 설립, 운영해 오고 있다.<br/><br/><br/>권 회장은 아프리카 앙골라 한국주재 명예총영사를 맡아오면서 오랜 내전으로 기아에 시달리는 앙골라의 문맹퇴치에도 힘쓰는 등 민족과 인종 차별 없이 기업이윤을 전 세계로 환원하고 있다.<br/><br/>&nbsp;<br/><br/>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회사가 어려워도 장학사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는 대목이다. 몇 해 전 회사가 어려워 호텔과 골프장 등 일부 계열사를 매각하기도 했지만 장학사업은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올 해도 울진지역 대학생 100여명을 선발 할 계획이라고 재단측은 밝혔다.<br/><br/>김성수 기자]]></description>
	<dc:creator>재단이사장</dc:creator>
		<dc:date>Sun, 30 May 2021 16:14:26 +0900</dc:date>
	</item>
	<item>
	<title>포항mbc보도, 동영장학재단, 착한 임대료 사업 동참(2020년 3월 2일)</title>
	<link>http://xn--6j1bwry94b9qb9a326o.kr/bbs/board.php?bo_table=notice&amp;wr_id=6</link>
	<description><![CDATA[포항mbc 보도(2020년 3월 2일) <br/><br/><A HREF="http://www.phmbc.co.kr/www/news/desk_news?mode=view&idx=168832" TARGET="_blank"  rel="nofollow">http://www.phmbc.co.kr/www/news/desk_news?mode=view&idx=168832</A><br/><br/><br/>울진에서도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br/>&nbsp;소상공인들을 위해 건물 소유자가 점포 <br/>&nbsp;임대료를 면제해주는 미담이 잇따르고 <br/>&nbsp;있습니다.<br/>◀ＥＮＤ▶<br/><br/>후포면 금음리에 있는 백암회센터 소유주인<br/>&nbsp;이문찬 삼화개발 대표는 세입자 11명에게 <br/>&nbsp;지난 한 달치 월세를 백여 만 원씩 모두<br/>&nbsp;천여만 원을 면제해줬습니다.<br/><br/>권영호 인터불고그룹 회장이 설립한 <br/>&nbsp;동영장학재단도 이사회를 열고 재단이 소유한 울진읍 3층 상가 세입자 7명에게 수백만 원에<br/>&nbsp;이르는 이달 한달치 임대료를 받지 않기로<br/>&nbsp;결정했습니다.]]></description>
	<dc:creator>재단이사장</dc:creator>
		<dc:date>Sun, 30 May 2021 16:11:26 +0900</dc:date>
	</item>
	<item>
	<title>(재)동영장학재단, 착한 임대료 운동 동참(2020년)</title>
	<link>http://xn--6j1bwry94b9qb9a326o.kr/bbs/board.php?bo_table=notice&amp;wr_id=5</link>
	<description><![CDATA[(재)동영장학재단, 착한 임대료 운동 동참<br/>&nbsp;<br/><A HREF="http://www.dk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746" TARGET="_blank"  rel="nofollow">http://www.dk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746</A><br/><br/><br/>소유 상가 3월 임대료 전액 경감 및 장학사업 등<br/>&nbsp;<br/><br/><br/>▲ (재)동영장학재단 황이주 이사장<br/>(재)동영장학재단(이사장 황이주)이 코로나19 사태로 지역경제가 크게 위축되자 세입자들과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재단 소유의 건물 세입자들에게 &#039;착한 임대료&#039;를 받기로 결정해 눈길을 끌고 있다.<br/><br/>(재)동영장학재단은 2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논의 끝에 &#034;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가 세입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함께 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3월 한달 치 임대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034;고 밝혔다.<br/><br/>(재)동영장학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상가는 울진군청 정문 앞 3층 건물로 울진시내 최고 중심가에 위치해 월세도 만만치 않다. 건평 400여 평의 이 건물에는 옷가게, 이발소, 식당, 병원 등 주민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업종들이 임대해 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주민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있어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br/><br/>(재)동영장학재단은 소유 건물 상가에서 나오는 임대료와 울진 죽변 출신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한 인터불고(IB) 그룹 권영호 명예회장이 이끄는 IB 그룹 계열사에서 매월 지원하는 기부금으로 장학 사업을 해오고 있다.<br/><br/>IB 그룹은 인터불고 호텔 대구와 경산 골프장 등 국내 계열사 일부를 매각하는 등 회사가 처한 국내외적인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룹 산하 계열사별로 매월 일정액을 정해 놓고 동영장학재단에 장학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br/><br/>황이주 이사장은 &#034;권영호 회장은 평소 &#039;장사는 돈이 아닌 사람을 남기는 것&#039;이라고 했다&#034;며 &#034;이번 결정은 재단 이사장으로서 권 회장의 철학을 잇는 일이라고 생각한다&#034;고 말했다. <br/><br/><br/>기자명장부중 기자]]></description>
	<dc:creator>재단이사장</dc:creator>
		<dc:date>Sun, 30 May 2021 16:07:54 +0900</dc:date>
	</item>
	<item>
	<title>동영장학재단 후학육성 31년째 이어가 (2017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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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올 해도 울진출신 대학생 100명에게 1억 원 전달<br/><br/><br/>이우근 기자&nbsp; | 기사입력 2017/03/04 <br/><br/>&nbsp;<br/><br/>【브레이크뉴스 울진】이우근 기자= 울진출신 권영호 인터불고(IB)그룹 회장이 후원하는 (재)동영장학재단(이사장 황이주 경북도의원)이 지난 24일 울진교육지원청 3층 강당에서 ‘2017학년도 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동영장학재단은 이날 임민규(울진고 졸업, 고려대 입학)군 등 울진지역 출신 대학생 100명에게 모두 1억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br/>&nbsp;<br/>이날 장학금 전달식에 관심이 모아진 것은 우선 후원사인 인터불고 그룹이 국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기업환경 속에서도 후학육성사업을 31년째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br/>&nbsp;<br/>또 장학생 선발에 있어서 성적우수자와 저소득계층 자녀 중심으로 해오던 기존 선발방식에 대거 변화를 준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br/><br/><br/>선발인원의 50%는 학년별로 나눠 성적만으로 뽑고, 또 30%는 기초생활 수급자, 장애우, 3자녀 대학생을 둔 가정, 뒤늦게 대학에 진학한 만학도 등 가정형편 등을 고려한다는 것. 그리고 10%는 예체능 분야, 나머지 10%는 서울대, 연·고대, 카이스트, 포항공대에 재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등 선발자체를 다변화 시켰다.&nbsp;  <br/>&nbsp;<br/>실제로 2015년에는 56세 가정주부를, 그리고 지난 해에는 48세의 늦깎이 학생을 발굴했으며, 올 해는 조손가정에서 어렵게 자란 전문대생을 선발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br/><br/><br/>또 후포 출신으로 현재 대전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권원대(40)씨가 “학창시절 받았던 장학금의 일부라도 후배들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며 보내온 100만원을, 권 씨의 이름으로 장학생을 선발, 지급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br/><br/><br/>특히 올 해는 재단 설립자인 권영호 회장이 10년 만에 직접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 장학금을 전달하고 장학생들에게 격려사까지 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권 회장은 이날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광활한 면적에다 GDP가 약 12조 달러, 인구가 13억이 넘는 중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꿈을 가지라”고 역설했다.<br/>&nbsp;<br/>권 회장의 장학사업은 올 해로 꼭 31년째다. 1986년 당시 스페인에서 수산업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배움의 꿈을 접는 고향 후배들이 없도록 하겠다며 장학재단을 설립, 울진과 경북지역 학생들을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br/>&nbsp;<br/>매년 2~4억원을 장학재단에 기부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국내외 1만 5천여명에게 모두 100억원이 넘는 장학금을 지급했다.<br/>&nbsp;<br/>울진출신 장학생만도 3천명이 넘는다. 이사장을 맡고 있는 황이주 경북도의원이 1기생 출신이다.권 회장의 장학 사업은 장학금 지원뿐만 아니라 각급 학교에 피아노 등 악기, 독서대, 시청각 기자재 지원 등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<br/>&nbsp;<br/>당시만 하더라도 시골 오지학교에 피아노를 보유한 학교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었다는 게 교육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br/><br/>권회장의 육영사업은 국내에만 그치지 않고 지난 1994년부터 중국 연변 과학기술대의 조선족 학생들과 길림지역 대학생 등 500여명을 선발, 매년 학비 전액을 지원하고 있는 등 해외동포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br/><br/>&nbsp;<br/><br/>또 중국 길림대학 내에 동영학원이라는 단과대학도 설립, 운영해 오고 있다. 권회장은 아프리카 앙골라 한국주재 명예총영사를 맡아오면서 오랜 내전으로 기아에 시달리는 앙골라의 문맹퇴치에도 힘쓰는 등 민족과 인종 차별 없이 기업이윤을 전 세계로 환원하고 있다.<br/>&nbsp;<br/>황이주 이사장은 “1기생 출신으로 이사장을 맡고 있는 만큼 무엇보다도 설립자인 권 회장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재단 운영을 반듯하게 하겠다”면서 “경제적 어려움 등 처해 있는 환경에 굴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학생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굴, 지원할 계획&#034;이라고 말했다.<br/><br/>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 대구경북]]></description>
	<dc:creator>재단이사장</dc:creator>
		<dc:date>Sun, 30 May 2021 16:02:22 +0900</dc:date>
	</item>
	<item>
	<title>동영장학재단, 1억6천만원 장학금 전달(2015년)</title>
	<link>http://xn--6j1bwry94b9qb9a326o.kr/bbs/board.php?bo_table=notice&amp;wr_id=3</link>
	<description><![CDATA[동영장학재단(인터불고그룹 권영호 회장 설립), 울진지역 학생에 1차 장학금 1억600만원 전달<br/><br/>영남일보 입력 2015-02-25&nbsp;  <br/><br/><br/><br/><A HREF="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50225.010280822330001" TARGET="_blank"  rel="nofollow">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50225.010280822330001</A>]]></description>
	<dc:creator>재단이사장</dc:creator>
		<dc:date>Sun, 30 May 2021 15:59:44 +0900</dc:date>
	</item>
	<item>
	<title>동영장학재단,690명에게 장학금 5억원 지급(2006년)</title>
	<link>http://xn--6j1bwry94b9qb9a326o.kr/bbs/board.php?bo_table=notice&amp;wr_id=2</link>
	<description><![CDATA[동영장학재단,690명에게 장학금 5억원 지급<br/><br/>2006. 03. 03.&nbsp; 세계일보 보도 <br/><br/><A HREF="https://news.v.daum.net/v/20060303204015133?f=o" TARGET="_blank"  rel="nofollow">https://news.v.daum.net/v/20060303204015133?f=o</A>]]></description>
	<dc:creator>재단이사장</dc:creator>
		<dc:date>Sun, 30 May 2021 15:56:07 +0900</dc:date>
	</item>
	<item>
	<title>테스트</title>
	<link>http://xn--6j1bwry94b9qb9a326o.kr/bbs/board.php?bo_table=notice&amp;wr_id=1</link>
	<description><![CDATA[동영장학재단<p><a href="http://xn--6j1bwry94b9qb9a326o.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notice%2F980945189_ZkH1YtRn_2edde5cc1c73165fc4bd3f1f3c99da2172df0ff8.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a href="http://xn--6j1bwry94b9qb9a326o.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notice%2Fthumb-980945189_ZkH1YtRn_2edde5cc1c73165fc4bd3f1f3c99da2172df0ff8_835x470.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xn--6j1bwry94b9qb9a326o.kr/data/file/notice/thumb-980945189_ZkH1YtRn_2edde5cc1c73165fc4bd3f1f3c99da2172df0ff8_835x470.jpg" src="http://xn--6j1bwry94b9qb9a326o.kr/data/file/notice/thumb-980945189_ZkH1YtRn_2edde5cc1c73165fc4bd3f1f3c99da2172df0ff8_835x470.jpg" alt="" class="img-tag img-tag "/></a></a></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15 Jan 2021 21:31:32 +0900</dc: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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